기억 저편의 아련한 그리움에 대하여

Everything - MISIA

결혼 전 사택에 살 때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 죽이 맞아 즐겁게 지냈다.
같은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니 그 안에서만 통하는 개그 코드가 존재했고 서로 그 안에서만 통하는 농담인줄 알면서도 그것이 별것 아닌 일을 더욱 더 재미있게 하기도 했다.

어느날 한 명이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드라마를 보자! 라고 선언했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나 하며 다들 한손에 맥주캔을 들고 시큰둥하게 쇼파에 빨래 널린 자세로 널부러져서는 재미 없으면 바로 자러 들어갈꺼야 라는 협박과 어서 세팅하라고 재촉했다.
그때 돌아간 드라마가 "야마토 나데시코"  다.
내 기억으론 45분짜리 한 회가 끝나자 다들 아쉽다 하나 더 를 이구동성으로 외쳤고 2편이 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3편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고, 4편이 끝나자 계속 볼 것인가 아님 한번 끊고 내일 볼 것인가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침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다들 아 내일 출근 "안" 할꺼야 를 외치며 고고씽이 대세가 되어 5편이 시작했다.

시작한 것이 토요일 오후 11시 였던 것 같다. 11편을 다 보고 나니 이미 밖은 훤하게 밝다 못해 사람들이 아침 운동 마치고 들어오는 10시였다.
다들 이미 자세는 흐트러질대로 흐트려져 바닥에 붙어있는 위치부터 소파 등받이 위에 올라간 자세까지 어떻하면 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으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였지만 이거 다 보고 잘꺼야 라는 일념으로 눈 밑의 다크써클을 과감히 무시하고 충혈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아마 다들 주인공이 상황마다 진심을 다해 헌신하지만 그 노력이 계속 좌절되는 것을 자신의 입장에 미루어 비춰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2002년에 친구가 파일을 하나 ICQ 로 날려주었다. 그냥 들어봐 란 말과 함께.
MISIA 의 everything 이었고 아마 2주일 내내 이 노래만 들었던 것 같다.
가사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지만, 哀而不悲 라고나 할까 그 정제된 슬픔이 차분해서 더욱 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노래 Everything 은 위에 쓴 야마토 나데시코의 주제가이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강하게.
달콤한 거짓말은 필요없어, 원하는 건 오직 당신 뿐.
--
덧붙임
드라마의 주인공이 수학자이다.
나는 수학자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드라마를 이때 처음 봤다.
그래서 내가 더 이 드라마가 잊혀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eoh

2009/11/09 12:07 2009/11/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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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말해질 수 있다.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 철학 논고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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