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생각과 경험에 대하여.

살다 보면 반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가 바로 사고의 한계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는 인간의 집" 이란 말도 있고 "말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수 있다" 란 금언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이 언어의 모든 것은 아니므로 경험의 내에서만 사고한다는 것을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관성의 법칙을 발표한 것을 보자.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험적으로는 명백히 그릇된 이론을 세상에 내 놓았을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 중에서 대관절 멈추지 않는 것을 경험해 봤냐는 말이다.
그런데도 씩씩하게 주장하고 또한 그것이 결과적으로 법칙이란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고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능력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경험에 제한받지 않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발휘한 것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영광된 이름을 가져다 준 것이다.

여기서 추상적인 사고만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고 경험은 무시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란 것을 해야겠다. 칸트가 말했듯이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적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무의미하다"
이것에 더해 그 경험이란 것의 범주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으로만 제한되어 있다면 그 맹목적함은 가없으리란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장할 때 그 근거로 쉽게 드는 것이 "내가 ... ." 로 시작되는 경험담이다.
자신이 겪은 경험의 생생함이 자신에게는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지겠지만 개인은 자기 자신만의 경험이 제각기 있기 마련이므로 자신의 생생함의 느낌에 비등하여 타인에겐 생경함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당연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능력의 저급함으로 돌리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의 법칙과 혼연일체된 완전체라고 오인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냄에 지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견의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되짚어 보는 것은 "내가 너를 이만큼 배려했으니, 나도 그만큼 존중받고 싶다." 는 이기적인 거래의 결과가 아니라, 내 주장은 내가 겪은 경험과 나의 사고 실험으로 그 근거를 삼고 있으니 당신의 주장 역시 나의 판단을 진실에 더욱 가깝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해 나의 간접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eoh

2009/09/04 06:02 2009/09/0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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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말해질 수 있다.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 철학 논고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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